면허는 2000년 정도에 딴 것 같다. 분명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해였는데, 취직 후에 돌아가셨는지 그전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첫 직장 (2월 졸업 후 잠깐 한 두 달 다니던 직장이 있었으니 정확하게 말하면 첫 직장은 아니지만) 다니며 어머니와 함께 운전 연습을 해서 출근을 했다. 직장이 바로 집 근처라 가능했던 일인데, 아파트 후문으로 나와서 우회전해서 죽 직진해서 5분쯤 가다가 우회전해서 회사 주차장으로 들어가면 끝인 정말 간단했던 운전이었다. 글을 쓰며 당시에 운전했던 길을 찾아보니 회사가 있었던 KT&G 건물이 아직도 있어서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살던 아파트는 재건축 후 입주를 앞두고 있다.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운전에도 언젠가 사고가 났다. 6월 1일부터 출근이었는지 6월 5일부터 출근이었는지 기억이 없지만, 여름이 되기 전 사고 난 것 같으니 아마 입사 후 한 달 이내로 사고가 난 것 같다. 내가 운전연습을 해서 출근하고 나면 그 길로, 어머니가 차를 운전해 집으로 되돌아오셨다. 그날도 같은 방식으로 출근길이었는데, 내가 운전하던 어머니 차가 우회전하며 택시 백미러를 부딪혀서 부러뜨린 것이다. 택시 기사는 그야말로 난리 난리가 났다. 2000년으로 바뀌었지만 뭐, 90년대라고 해도 무방할 시기이다. 차에서 내린 나이 지긋한 택시 기사는 젊은 20대 여자 (대학 졸업하고 갓 25살도 안 되었던 때)와 50대 초반의(당시 53세) 어머니 (지금의 내 나이와도 크게 차이 나지 않네)를 보고는 길길이 날뛰었다. 운전하는 여성이 많지도 않을 때였고, 운전하는 젊은 여성도 그리 많지 않을 때였다. 아침부터 암탉이 울면 재수가 없다더니, 영업하는 차를 망가뜨렸다고 난리를 쳤다. 그때 당시 돈으로 수리에 얼마가 드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보험처리를 하지 않고 현금으로 5만 원쯤 택시 기사에게 쥐어주었던 것 같다. 나중에 회사에 가서 얘기를 하니, 돈을 너무 많이 주었다고 직원들이 도리어 화를 냈다. 그렇게 운전에 자신을 잃은 나는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운전대를 잡으려고 하면 길길이 날뛰던 택시기사의 화난 얼굴과 커다란 소리로 윽박지르는 모습이 동시에 떠올랐다. 대학생 때 진즉에 면허를 따서 연습을 했으면 좋았을 걸 늘 후회했다.
곧이어 어머니는 나를 남겨두고 강원도의 아버지 사택으로 들어가셨다. 서울에 혼자 남게 된 나는 더 이상 운전연습할 차도 없고, 연습을 할 기회도 없어 내 운전면허는 곧바로 장롱면허가 되었다. 운전은 두려웠지만, 그 뒤에도 운전에 대한 미련은 계속 남았다. 첫 직장에서 다른 직장으로 회사를 옮기고, 두 번째 회사에서는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출퇴근을 했다. 회사 다니는 것만 해도 너무 힘들어서 운전연습은 언감생심 생각도 못 했다. 눈 뜨면 회사에 가고, 야근하고 집에 오면 바로 잠이 들 시간이었다. 회사도 바빠서 그렇기도 하고, 설사 차가 있어도 주차할 자리가 없어서 차를 가져 다닐 수도 없었다. 당연히 주인공인 차도 없었지만. 세 번째 회사에서는 진짜 차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때는 집에서 회사가 상당히 멀었는데 대중교통조차 불편했다. 대신에 내가 운전을 할 줄만 알면 회사에서 차를 줄 수도 있는 상황. 그런데 운전을 못 하니, 회사차는 그림의 떡이 되어 버렸다. 회사차를 몰고 출장이라도 나가려면 운전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 회사에 입사해서 면허를 딴 신입사원조차 용기를 내 운전을 시작하고 회사차를 몰고 다녔다. 너무 부러워서 다시 운전면허 학원에서 운전연수를 받았다. 그런데, 곧이어 그 직장을 그만두게 되어 회사차는 결국 한 번도 운전해 보지 못 한 채 운전연수는 비용만 날리고 다시 운전감각을 잃어버렸다.
결혼하고 나서, 아기를 낳기 전 남편에게 다시 연수를 받았다. 그 때야말로 운전을 익힐 정말 좋은 기회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운전 연습을 했고 고속도로를 달릴 수도 있게 되었다. 친정에 갈 때 남편이 피곤하면 내가 대신해서 운전을 해 보기도 했던 것 같다. 무섭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임신하고, 아기가 태어나면서 아기를 돌보느라 운전을 해 볼 기회가 영영 없었다. 그렇게 15년이 지났다. 그리고 어제. 무슨 용기가 났는지 다시 운전을 해보겠다고 나섰다. 나, 다시 할 수 있을까? 지금 50이지만, 지금 익혀놔도 70까지 족히 20년은 운전할 수 있을 텐데. 앞으로 아이가 집에서 먼 고등학교에 가면 아이 등하교도 시켜주고 명절에 남편 대신 운전도 나누어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제 처음 잡아본 운전대는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두려움과 설렘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장롱면허를 탈출해 보겠습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운전연습8일차-주차연습 못 함 (4) | 2024.11.11 |
---|---|
운전연습7-주행, 첫 주차시도 (3) | 2024.11.09 |
운전연습 4일차 - 비가 와도 연습을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 (3) | 2024.10.27 |
운전연습 3일차, 어쩌다 도로주행 (1) | 2024.10.26 |
운전연습 2일차 (사이드미러 조절, 룸미러 조절법 배움) (0) | 2024.10.20 |